VERSI OUTSIDER ART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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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SI OUTSIDER ART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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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리
(Andrew Li, 1962)
앤드류 리(Andrew Li, 1962)앤드류 리(Andrew Li, 1962)는 1962년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90년 발달장애 예술가를 위한 비영리 시각예술 스튜디오 "Creativity Explored"에 합류하였다. 앤드류 리에게 도시 경관, 대중교통, 동물, 군중은 중요한 영감의 주제가 되어 작품을 이끌어 나간다. 그의 작품 속 대상들은 바쁜 도시를 활보하는 역동적인 모습으로 묘사되며, 이는 마치 작가 자신의 생활을 투영한 것처럼 보인다. 앤드류 리의 작품들은 그가 읽어낸 도시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묘사 된 대상 이외의 형식이나 표현방식에는 차이를 가지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진다.
아우구스트
발라
(August Walla, 1936-2001)
아우구스트 발라(August Walla, 1936-2001)아우구스트 발라(August Walla, 1936-2001)는 1936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1952년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이후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고 병원에 수용되었다. 병원에 수용된 아우구스트 발라는 1970년 Maria Gugging Psychiatric Clinic에서 만난 레오 나브라틸(Leo Navratil, 1921- 2006) 박사의 권유로 ‘구깅 예술가의 집 (Haus der Künstler)’으로 입주하게 되었다. 그는 예술가의 집에서 머물며 주변의 모든 곳에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작품세계에서 글과 그림은 밀접하게 관계된다. 그는 단어가 가진 소재로서 성격과 입체적이고 변형이 가능한 상징성에 주목하며 외국어 사전을 수집해 그 안의 용어들을 그림으로 나타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작업에 신, 악마, 성인, 예언자 등 수많은 상상의 신들을 차용했다. 이렇듯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신화를 만들어 신들의 우주를 창조해낸 아우구스트 발라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예술가의 집에 머물며 ‘발라의 방’을 완성했다. 1990년 오스카코코슈카상을 수상한 아우구스트 발라의 작품은 더블린 아일랜드 현대미술관, 로잔 아르브뤼 미술관,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에슬미술관 등에 소장 되어있다.
프란츠 캄란더(Franz kamlander, 1920-1999)
프란츠 캄란더(Franz kamlander, 1920-1999)프란츠 캄란더(Franz kamlander, 1920-1999)는 1920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농아였던 그는 정식으로 수화 교육을 받지 못하여 자신만의 수화를 개발하여 사용했다. 프란츠 캄란더는 1981년부터 그가 사망할 때인 1999년까지 ‘구깅 예술가의 집 (Haus der Künstler)’에서 머물며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는 자신의 성장 배경을 작품활동에 연관 지어 농장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토대로 빨강, 파랑, 노랑의 소들을 그렸다. 그는 소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동물을 그렸는데 그의 작품은 모두 사실적 묘사가 아닌 다양하고 자유로운 형태로 묘사된 특징을 가진다.
프란츠 케른바이스
(Franz Kernbeis, 1935)
프란츠 케른바이스(Franz Kernbeis, 1935)프란츠 케른바이스(Franz Kernbeis, 1935)는 1935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20살 때 구깅 정신의과전문요양소에 입소한 이후 1981년부터 ‘구깅 예술가의 집 (Haus der Künstler)’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작업은 트랙터, 쟁기, 건물, 자전거, 비행기 등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일상생활을 투영하고 있다. 프란츠 케른바이스의 작품은 모두 외곽선이 끊어지지 않고 한번에 이어지도록 빠르게 그려진 특징을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선 위에 연필이나 색연필을 이용한 세부 묘사가 진행된다. 그의 초기작에서 보이는 섬세한 선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굵어지는 형태로 변하였고,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부터는 다양한 색의 선을 사용한 추상적인 형태가 밀도 높게 발전됐다. 현재 프란츠 케른바이스의 작품은 린츠 렌토스미술관, 클로스터노이부르그 에슬미술관, 로잔 아르브뤼미술관에 소장되어있다.
가브리엘 에브랄드(Gabriel Evrard, 1991)
가브리엘 에브랄드(Gabriel Evrard, 1991)가브리엘 에브랄드(Gabriel Evrard, 1991)는 1991년 벨기에에서 태어났다. 그는 특수학교 재학시절 만난 선생님의 추천으로 2012년부터 '라 에스 그랜드 아뜰리에(La “S” Grand Atelier)'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가브리엘 에브랄드는 미디어 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사전적 지식을 가졌다. 또한 이러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다양한 종류의 사진을 극표현주의적 스타일로 표현하며, 날카로운 선으로 영화배우, 록밴드, 팝 가수 등을 재해석한다.
제라드 센드리(Gerard Sendrey, 1928)
제라드 센드리(Gerard Sendrey, 1928)제라드 센드리는 1928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1967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이전까지 그는 치안판사로서 평범한 삶을 살았다. 제라드 센드리 작품의 특징점 중 하나는 정밀하게 묘사된 기하학적 패턴이다. 그는 이러한 패턴을 이용하여 추상적인 신체를 묘사하였는데, 이는 멀리서 보았을 때 3차원의 입체적 형태로 보인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점 중 하나는 프랑스 출신 아트브룻 작가 가스통 샤이삭(Gaston Chaissac,1910-1964)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특성을 단순화시킨 것이다. 제라드 센드리는 이러한 추상작업을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완성하였고, 그의 작품은 유럽과 미국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전시되었다.
한스랑그너
(Hans Langner, 1964)
. 한스랑그너(Hans Langner, 1964)한스랑그너(Hans Langner, 1964)는 1964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는 ‘새’를 이용한 멀티미디어 예술작업을 통해 ‘버드맨’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의 작업은 대체로 밑그림 없이 바로 진행되는데 검은 선으로 윤곽을 그린 후 밝은 색으로 안을 채워 새의 형상을 묘사한다. 그의 평면작업 외 행위 예술(현장 예술)에서도 이와 같은 직관성이 나타난다. 한스랑그너는 1992년 처음 작업을 시작한 이후 1995년부터 1999년까지 홍콩에서 지내는 동안 어린이 예술학교를 세우는 등 많은 이력을 남겼다. 이후 그는 뮌헨으로 활동지를 옮겨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는 바트퇼츠의 낡은 집을 수 백 마리의 새로 가득한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재 탄생시켰고, 이를 ‘예술가의 집’이라 명명했다. ‘예술가의 집’ 정면 설치 부분은 2017년까지 구깅 주택의 외곽에 보존되었다. 현재 그의 작품은 벨기에 귀슬렝 미술관, 용인 벗이미술관 등에 소장 되어있다.
하인리히
라이젠바우어(Heinrich Reisenbauer, 1938)
헬무트 홀라디슈(Helmut Hladisch, 1961)
헬무트 홀라디슈(Helmut Hladisch, 1961)헬무트 홀라디슈(Helmut Hladisch, 1961)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그는 타고난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2013년부터 ‘구깅 예술가의 집 (Haus der Künstler)’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헬무트 홀라디슈의 작업에 사용되는 소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 중에서도 그가 묘사한 나무는 주목할 만하다. 그는 나무를 끝이 뾰족한 아치형 혹은 가장자리가 둥근 사각형으로 묘사하며, 종종 나무 꼭대기 부분을 십자 형태로 형상화한다. 그는 주로 연필로 작업을 진행하는데,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개발하였다. 종이 위에 형태가 겨우 보일 정도로만 스케치를 한 후 위에 덮어 씌우듯 무수한 평행선을 긋는다. 이후 정교한 조정을 통해 부분적으로 명암을 살리고 다양한 굵기의 연필을 사용하여 기이한 원근감의 이미지를 창조해낸다. 헬무트 홀라디슈는 회화 작업뿐만 아니라 잡지, 사전 등 매체를 이용한 작업 또한 진행한다. 그는 작업물의 원형을 해체한 뒤 다시 재구성하는데, 이때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시켜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낸다.
조지안 헤르만(Josiane Herman, 1970)
조지안 헤르만(Josiane Herman, 1970)조지안 헤르만(Josiane Herman, 1970)은 2009년 부터 현재까지 '라 에스 그랜드 아뜰리에(La “S” Grand Atelier)'에서 작품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조지안 헤르만은 책에서 복사된 이미지를 파스텔이나 연필을 이용하여 변형시키는 작업을 진행한다. 그의 작업에 차용되는 이미지는 주로 20세기 이전의 배우, 과장된 컬의 모습을 한 여가수, 정장을 차려입은 마에스트로 등이다. 그는 두개의 분리된 이미지를 하나의 이미지로 병합하여 작업을 진행하는데 이는 관람자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한다. 또한 조지안 헤르만의 작품은 작품 속 원본의 이미지가 변형되는 과정을 이해한다면 더욱 더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유르겐 타우셔(Jurgen Tauscher, 1974)
. 유르겐 타우셔(Jurgen Tauscher, 1974)유르겐 타우셔(Jurgen Tauscher, 1974)는 1974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선천적 소두증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는 1999년 클로스터노이부르크의 공동주택에서 만난 관리인의 권유로 ‘구깅 아틀리에(the atelier gugging)’로 이주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예술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유르겐 타우셔는 공상 과학에 대한 환상을 가졌고, 이러한 관심은 그의 작품세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비행기, 위성, 우주정거장 등을 소재로 이용하여 작품을 구성한다. 그가 작업에 사용하는 주 재료는 연필이다. 그는 이중선의 드로잉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데, 이렇게 겹쳐진 선이 만들어낸 빛은 그의 작품을 더 조화롭게 만든다.
ART BRUT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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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뵐플리 (Adolf Wolfli, 1864-1930)아돌프 뵐플리(Adolf Wolfli, 1864-1930)는 스위스의 베른 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7살때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떠난 이후부터 농장일을 도우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는 그 과정에서 범법을 일삼았고, 1889년 베른 근교의 발다우 병원에 수용되어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아돌프 뵐플리는 그의 나이 35세부터 그림, 글, 작곡 등 다양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 2만 5천장, 콜라쥬, 글, 악보 등 많은 양의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에는 인물, 음표, 문장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혼합 되어있다. 그 안에 그려진 장식적 요소들은 작품안에서 장식성과 운율성을 이루었다.
알로이즈 코르바즈(Aloïse Corbaz, 1886-1964)알로이즈 코르바즈(Aloïse Corbaz, 1886-1964)는 1886년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시절 오페라 가수를 꿈꾸었으나 중등 교육을 수료한 이후 재봉사가 되었고, 나중에는 프로이센 궁전에 가정교사로 들어갔다. 알로이즈 코르바즈는 그곳에서 만난 카이저 빌헬름 2세 황제에게 반해 그와 사랑에 빠지는 상상을 하며 홀로 사랑을 키워갔다. 그러나 제 1차 세계대전 발발로 알로이즈 코르바즈는 로잔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점차 정신분열 증상을 나타냈고, 1918년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그리고 1920년부터 그곳에서 예술 작업을 시작하였다. 알로이즈 코르바즈의 작품에 사용되는 주 재로는 크레용과 연필이었으나, 종종 으깬 꽃잎이나 치약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여성이 중심을 이룬다. 또한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 왕자와 사랑에 빠진 공주, 화려한 무대 위 여배우 등을 등장시키며 자신이 꿈꾸었던 세계를 창조해냈다.
그레고리 L. 블랙스톡(Blackstock, 1946)그레고리 L.블랙스톡(Blackstock, 1946)은 자페증을 가진 미국의 아트브룻 작가 중 하나다. 그는 자신의 작은 방 속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우주를 재 해석했다. 그의 작은 방은 그에게 있어 안식처이자 작업실이었다. 블록스톡은 헬스클럽에서 일하는 25년 동안 길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거나 클럽 간행물에 그림을 그리는 등 부업을 병행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고, 2001년 은퇴 이후에는 작품활동에 모든 열정을 쏟았다.
찰스 스테판(Charles Steffen, 1927-1995)찰스 스테판(Charles Steffen, 1927-1995)은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그는 28세부터 ‘The Chicago Institute of Design’에서 학문을 익혔다. 그러나 신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그는 철학 수업에 반감을 가졌고, 결국엔 수업 교재를 불사르며 자살 소동을 벌였다. 이 소동 이후 그는 우울증에 걸려 일 년을 채 마치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긴 시간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던 그는 1963년 마침내 병원을 떠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정신병원에서 돌아 온 그는 외계인을 닮은 생명체들이 사는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였다. 이 곳은 모든 것들이 스스로 탈바꿈하는 세상으로, 그가 묘사한 존재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모습을 가졌다. 또한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미술언어를 만들어내며 하루에 1-3장의 그림을 그려냈다. 찰스 스테판은 다양한 크기의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때로는 2미터가 넘는 그림을 그렸으며, 작품 밑에는 자신의 별명인 ‘Chas’로 서명을 남겼다.
쿠르지오 디 지오반니(Di Giovanni, Curzio, 1957)쿠르지오 디 지오반니(Di Giovanni, Curzio, 1957)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그는 몇군데의 요양소를 거친 후 1979년 파비아의 병원에 수용되었다. 오랜 시간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열망을 가졌던 쿠르지오 디 지오반니는 2001년 요양소 내 미술수업에 참석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양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는 동물과 캐릭터에서 영감을 받아 그 중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들을 작품에 그려 넣었다. 쿠르지오 디 지오반니의 작업 방식은 이러한 대상들을 정교한 선과 모자이크 기법으로 구성한 뒤 색연필로 채색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얼굴이나 신체의 일부분이 변형되었으며, 바탕에는 여백을 많이 남기는 방식으로 왜곡되고 캐릭터화된 모습이 뚜렷하게 도드라져 보인다.
에릭 더켄(Eric Derkenne, 1960-2014)에릭 더켄(Eric Derkenne, 1960-2014)은 벨기에 스타블룻에서 태어났다. 그는 심각한 다운증후군 증상을 앓았지만, 가족들의 격려 속에서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병을 극복하려 노력하였다. 에릭 더켄에게 그림은 최고의 관심사이자 소통 수단이 되었다. 이후 1983년부터 그는 정신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한 예술 공간 '라 에스 그랜드 아뜰리에(La “S” Grand Atelier)'의 일원이 되었다. 에릭 더켄은 15년 이상 작업실의 작업대와 뒤쪽 공간, 창문가를 오가며 생활했다. 그리고 곳에서 혼자 작업하며 집중도를 높였다. 그의 몸과 정신은 병으로 인해 미성숙 했지만 수많은 볼펜 선을 쌓아 올리듯 참을성 있게 그림을 완성해냈다. 그의 그림이 완성되는 시점은 그가 아끼던 볼펜을 내려 놓는 그 시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에릭 더켄은 2011년 악화된 병세로 더이상 미술 활동을 할 수 없게되었다.
펭이 구오(Guo Fengyi, 1942-2010)펭이 구오(Guo Fengyi, 1942-2010)는 중국 산서성 시안에서 태어났다. 1962년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공장에 취직하였으나, 관절염으로 인해 39세에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극심한 관절염에 시달리던 그는 중국의 전통적 민간요법 중 하나인 기공에 심취하였고, 이 원리를 깨우쳐 다른 이들을 지도하며 이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다. 그는 기공에 대한 글을 다량으로 써내던 중 1985년부터는 글 이외에 그림 그리는 것 또한 시작하였다. 그는 많은양의 그림을 달력의 뒷면이나 한지 등에 그렸는데, 어떤 것은 5미터 이상의 높이가 되었다. 이렇듯 큰 규모의 그림을 그릴 때는 자신 또한 전체의 그림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위에서부터 아래로 작업을 하거나 말아 놓은 종이를 조금씩 펴 내려가면서 부분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펭이 구오는 창작을 할 때 먼저 명상을 한 후 평온과 행복을 상징하는 붉은 색의 옷을 입고 부처로부터 영감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은 항상 펜과 먹 혹은 다른 색의 잉크로 그려지는데, 작품의 주제는 인간의 몸과 자연 세계 사이의 연결을 다룬다. 그는 반인, 반식물 등의 그림을 마치 수를 놓듯이 실처럼 가는 선으로 그려 넣어 종종 한 형태가 다른 형태 안에 들어가 소멸되거나 또는 증식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헨리 다거(Henry Darger, 1892-1973)헨리다거(Henry Darger, 1892-1973)는 1892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곱살이 되던 해 지적 장애 진단을 받고정신병원과 고아원에서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이후 17살부터 내내 병원 청소부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고 1973년 죽기 전까지 공동주택의 방 한 칸에서 생활했다. 헨리 다거는 좁은 방 안에 틀어박혀 평생에 걸쳐 방대한 양의 작품을 제작했다. 그의 작품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그의 이웃이자 유일한 말동무였던 네이슨 러너에 의해 발견이 되었는데, 작품은 무려 15,145장에 이르는 방대한 양으로 좁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의 작업은 상업잡지를 트레이싱하여 그려진 비비안 걸스라는 일곱자매가 글랜델리아 왕국에서 어린이를 노예로 부리는 어른들에 대항해 전쟁을 벌이는 서사로 오묘하고 비현실적인 느낌을 가진다.
요셉 호퍼(Josef Hofer, 1945)요셉호퍼(Josef Hofer, 1945)는 오스트리아 바바리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시절 농장에 고립되어 사회적 관계를 맺지 못한채 40년을 농아로 지냈다. 그는 1982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점차 고립되었던 공간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후 1985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림은 그에게 있어 유일한 표현 수단이 되었다. 요셉호퍼는 사물이나 대상을 엑스레이 찍듯 묘사하며 그 안에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제시한다. 그의 작품들은 근본적으로 대상의 내부 또는 외부를 묘사하는데, 그 중에서도 관능적인 면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인간의 나체를 자주 묘사한다.
. 주디스 스콧(Judith Scott, 1943-2005)주디스 스콧(Judith Scott, 1943-2005)은 미국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그는 7살때 다운증후군으로 인해 장애아동을 위한 시설에 수용되었다. 이후 그의 쌍둥이 자매 조이스가 그에 대한 양육권을 획득 하기 전까지 35년이 넘는 시간동안 시설에서 지냈다. 주디스 스콧은 집으로 돌아온 후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의 "Creative Growth Art Center"에 합류하여 44세의 나이에 예술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종류가 다른 이질적인 물건들을 함께 묶은 뒤 그 주변을 실, 끈 등 여러 종류의 섬유로 감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그의 작품은 거대한 누에고치를 연상한다. 그가 작업할 때 사용하는 매듭 방식은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이렇게 엮어진 끈은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형태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모튼 바틀릿(Morton Bartlett, 1909-1992)모튼 바틀릿(Morton Bartlett, 1909-1992)은 8살에 고아가 된 이후 매사추세츠의 한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그는 보스톤 필립스 엑스터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하버드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사진작가의 꿈을 가지고 대학을 중퇴하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사진 현상작업으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더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되었고, 이후 그는 몇 가지의 직업을 거치다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그래픽 디자인 및 인쇄 에이전시를 차렸다. 1936년 그는 인형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인형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1962년 모턴 바틀릿의 친구였던 지브란이 양키 매거진에 그의 창작활동에 대한 칼럼을 작성하게 되면서 그는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그는 자신이 제작한 인형들을 분해하여 상자에 담아 자신의 집에 감추었고, 이들은 모두 그가 사망한 이후에야 발견 될 수 있었다.
가스통 사보이(Savoy Gaston, 1923-2004)가스통 사보이(Savoy Gaston, 1923-2004)는 스위스 프리부르주 아탈렝에서 태어났다. 그는 9살이 될 때까지 말을 하지 못해 농아를 위한 시설인 권젯에 입소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곳에서 그에 맞는 교육을 받으며 그림에 대한 재능을 발견했다. 이후 가스통 사보이의 청각 능력 또한 이 전보다 나아지면서 약간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가스통 사보이는 재료에 영향을 받지 않고 수 많은 작업을 진행하였다. 카드보드, 봉투의 뒷면, 신문의 여백, 나무 조각 등 그는 어느 곳에나 그림을 그렸다. 그는 주로 암소나 양 등의 동물을 모티브로 하여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때로는 종교적 축제를 주제로 한 그림도 그렸다. 그의 초기 작품은 보관상의 문제로 현재 남아있지 않으며, 1988년 성 요셉 자선병원에 들어간 이후 작업한 200여점의 그림만이 남았다.